상단여백
HOME 종합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동화약방을 아시나요?…임시정부 국내 전진기지
서울 중구 순화동에 서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서울 연통부지’ 표석 © 뉴스1 황덕현 기자

서울 중구 순화동의 한 이면도로 앞에는 사람 키보다 큰 표석이 서 있다. 넓적한 바위에 붙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서울 연통부지'는 지난 1995년 설치돼 20년이 넘는 세월 대한독립의 역사를 알려 왔다. 표석 뒤편에는 동화약방의 후신인 동화약품의 옛 건물이 '연통부지' 표석을 굳게 지키고 있다.

연통부는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절 국내 연락의 거점 역할을 했다. 임시정부가 관할해 상해와 국내의 연락과 독립자금을 모아 전달하는 기능을 한 것이다. 표석을 설치한 서울시도 연통부가 "서울시청과 비슷한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연통부와 부지 표석을 감싸고 있는 동화약방은 당시 불가분의 관계였다. 동화약방 초대회장인 민강 사장이 약방을 연통부 비밀 거점으로 운영했기 때문이다.

궁중 선전관 출신인 동화약품 창업자 민병호씨는 대한제국의 식산흥업정책에 부응해 1897년 자신의 집에서 동화약방을 만들고 곧바로 사장에 아들 민강씨를 앉혔다.

독립운동에 관여해 온 민 사장은 동화약방 설립 직후부터 자신들의 대표상품 활명수를 판매한 금액으로 독립 자금을 조달해 임시정부에 전달했다.

 

 

 

민강 동화약방 창업자(동화약품 제공) © 뉴스1


1905년부터는 한국통감부(조선총독부의 전신)의 감시도 심해졌고, 1908년부터는 서슬 퍼런 경성감옥(서대문형무소의 전신)이 목전에 있었으나 민 사장은 1909년경 항일 비밀결사 단체인 대동단에도 가입해 의친왕 이강을 상해로 탈출시켜 임시정부 조직에 참가시키려는 계획에도 발을 들였다. 비밀단체에서 활동했으나 점차 반경이 넓어진 탓에 사실상 전면에 나선 것이다.

민 사장은 결국 1921년 일본의 감시망에 걸려 수차례 옥고를 치르다 모진 옥살이와 고문 후유증으로 1931년 별세했다. 정부는 그의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해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고, 그의 시신은 현재 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

1937년 동화약방은 민족기업가이자 독립운동가이던 보당 윤창식씨에게 넘어갔다. 이후 '동화약품 공업주식회사'로 이름을 바꾼 회사는 광복군 중대장을 지낸 그의 아들 윤광열 전 회장 체제로 변모한 뒤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가치와 철학은 후대 사장들도 이어받았다. 물 부족국가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기부활동을 해왔으며 지난 2017년에는 활명수 120주년 기념판 판매 수익금을 대한적십자사에 기부해 인도네시아의 식수 및 위생 관련 사업을 지원했다.

한국 최장수 브랜드 활명수는 출시된 지 100년이 훨씬 넘은 지난해 갤럽 소비자 조사에서 소화제부문 인지도 99%, 선호도 1위를 차지했다.

 

 

 

뉴스1 <뉴스커넥트>를 통해 제공받은 컨텐츠로 작성되었습니다.

송양주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